코맥 매카시의 2006년작 더 로드(The Road)
올해들어 처음 읽은 책이다.
점심시간에 코엑스 반디앤루니스에 들러서 종종 만지작 거리다 만 책인데 뜻하지 않게 설연휴 기차역에서 사들고 하루만에 읽어 버렸다.
'성서에 비견되었던 소설'이라는 표지의 홍보문구, 그리고 암울한 스토리라는 것만 보고 스릴러나 그와 비슷한 류의 소설일 것이려니 생각했었다. 특히 2003년에 나왔던 프랑스 영화 '더 로드'도 기억 속에 강하게 자리잡고 있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물론 영화와 이 소설은 아무 관계가 없다)
그런데... 스릴러도, 추리, 공포소설도 아니다.
어떤 이유로 문명이 파괴되고 폐허가 되어버린 지구 어느 지역에서의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 소설 전체는 하나의 플롯으로 진행이 되고 아버지와 아들 외 특별한 등장인물이랄 것도 없다. 게다가 소설이 끝날 때까지도 아버지와 아들의 이름조차 나오질 않는다. 그냥 사내, 그리고 소년이라고 칭해지는 그들이 전부다. 그렇기에 지구 상에 존재하는 아버지와 아들이라면 그 누구라도 이들이 될 수 있다.
썩 호감이 가지 않는 책표지 디자인과는 달리 한 번 손에 잡으니 책을 놓지 못할만큼 흡입력이 대단하다. 근래 읽었던 책, 소설 중에서 가장 몰두하면서 읽었던 것 같고 간만에 책읽기의 재미를 느끼게 해 준 작품이었다.
인간사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관계이자 본능. 부모와 자식,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관계 속에서 황량하기 그지 없는 세상에 자식을 남겨두고 언젠가는 떠날 수 밖에 없는 모든 부모, 아버지들에 관한 이야기랄까... 자신 역시 그렇게 강하지 못하지만 본능적으로 아들을 지켜주고 책임져줘야 하는 아버지, 그리고 그 돌봄의 과정 속에서 하나 둘 씩 자식의 홀로서기를 가르치고 일깨워주는 그것. 때로는 그 자식은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원망하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어찌보면 어린 자식과 커버린 아버지라는 존재가 상호 가지게 되는 숙제이자 밟아 나가야하는 전철이라는 것.
물론 이야기의 맨 처음과 그 뒤가 생략된 것 같은 아쉬움, 잘 읽혀 내려감과는 다른 무미건조함, 어찌보면 많은 부분을 책을 읽는 이들의 상상과 느낌에 맡겨두고 있기도 하지만 1만원이 조금 넘는 책값과 읽어가는 시간의 투자라는 관점에서 보면 내용 그대로를 받아들여가면서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 가슴에 남겨지는 그것만으로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아버지, 그리고 자식. 서로를 바라보고 이 세상에서 주어진 시간 동안 함께 해나갈 수 있는 것들, 특히 자식의 위치에 있던 내가 언젠가 되어야 할 아버지라는 모습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지금 세상에 공존하고 있는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 그 어떤 뭉클함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주어질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의 묘미는 충분한 것이다.
*단, 책 표지의 '320페이지의 절망, 단 한 줄의 가장 아름다운 희망'이라는 문구에는 개인적으로 동의할 수 없다. (미국 현지에서는 성서에 비견된다는 문구도 있는데 성서를 읽어보지 않아서 뭐라 말할 순 없다) 어디까지나 이 문구는 홍보성 멘트로 보고 넘기는게 좋을 것 같다.